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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암을 담은 극 <뮤지컬 매드해터>후기

by 느새디든 2025. 12. 16.

산업혁명의 암을 담은 극 뮤지컬 매드해터후기

뮤지컬 '매드해터: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 후기

​뮤지컬 '매드해터: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는 루이스 캐럴의 고전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친 모자장수에게 영감을 받아 19세기 런던의 산업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새롭게 탄생한 창작 뮤지컬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동화적 상상력을 넘어, 당시 사회의 어두운 면모와 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재해석과 배경

뮤지컬 '매드해터'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던지는 광기 어린 인물, 미친 모자장수 캐릭터의 기원을 상상하며 시작됩니다. 원작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영국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으로 옮겨와 현실의 무게를 더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시기 영국은 산업화로 인한 도시 발달과 경제적 풍요를 누렸지만, 동시에 계급 격차의 극심화, 아동 노동, 계급 갈등, 귀족들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가 노정된 모순적인 시기였습니다. 작품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본의 규칙에 갇힌 인간의 운명을 재해석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가진 은유적 의미를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확장합니다.

작품은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은 무얼까?"라는 미친 모자장수가 던지는 수수께끼로 막을 올립니다. 이 수수께끼는 단순하게 극의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를 넘어, 관객들에게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사고할 권리를 되찾게 하는 역설적인 질문으로 작용합니다. 모자장수는 극의 사회자로 등장하여 모자회사 사장 헥터와 그의 아들 조슬린, 공장 노동자, 거리의 도티 여사 등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며 극을 이끌어갑니다.

주요 인물 및 서사

작품의 주인공은 14세 굴뚝 청소부 노아입니다. 어린 시절, 노아는 굴뚝 속을 기어오르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몸이 자라 더 이상 굴뚝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실직을 넘어, 런던 시민권으로 상징되는 '모자'를 잃고 차가운 자본주의 세계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소년의 운명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후 노아는 런던 시민의 상징인 모자를 동경하여 헥터의 모자 공장에 취직합니다.

공장에서 일하며 노아는 펠트 제작 과정에서 퍼지는 수은 증기가 노동자들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개선을 요구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거리로 쫓겨납니다. 이때 노아는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점점 조금씩, 잠깐만'이라는 넘버를 통해 노래합니다. 이 넘버는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누가 정상이고 누가 미친 자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노아에게 각자의 모자가 필요하다고 일깨워 준 인물은 헥터의 아들 조슬린입니다. 헥터의 공장이 신사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원통형 탑햇만을 만드는 것에 의문을 품은 조슬린은, 사람마다 표정, 말투, 생각이 다른데 모두 같은 모자를 쓰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반면, 노아는 동일한 모자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며 자본주의적 사고에 갇힌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조슬린과의 만남을 통해 노아는 저마다의 개성을 반영한 모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장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맞춤형 모자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헥터는 이 사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모자는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며, 오직 귀족들을 위한 탑햇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계급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헥터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아를 회유하고 사업을 방해합니다.

연출과 음악

'매드해터'는 빛과 공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연출이 돋보입니다. 조명은 단순히 시각적인 장치를 넘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또 다른 서사로 기능하며, 장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감은 인물의 상태를 암시하고 대사보다 먼저 변화의 징후를 보여줍니다. 작은 공연장의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네 개의 철망은 모자걸이, 공장 철조망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며 밀도 높은 연출을 선보입니다. 사람들의 사연과 희망을 담은 모자를 걸어두는 공간이 동시에 근로자와 세상을 가르는 벽이 되는 역설적인 연출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음악은 끊임없이 즐겁지만 그 속에 비극을 담아내는 역설적인 매력을 지닙니다. 모자 공정 과정을 그리는 '비버랩'은 재치 있는 라임으로 웃음을 유발하지만, 경쾌한 리듬 속에 수은의 독성이 스며 있어 유희와 비극이 한 장면에 겹쳐집니다. 이는 슬픔을 고조시키기보다 유희의 언어로 현실의 잔혹함을 밀어 넣어 관객에게 감상적인 동정 대신 '불편한 자각'을 경험하게 합니다. 음악이 밝을수록 장면의 어두움이 더욱 도드라지는 이러한 방식은 '매드해터'가 '착취의 현실을 동화처럼 감싸는 방법'입니다. 무대 곳곳에 배치된 역설적인 이미지와 상징들은 이 작품이 단순한 사회고발극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을 탐구하는 작품임을 드러냅니다.

배우들의 열연

'매드해터'는 2인극으로 구성되어 두 배우가 극 전체를 이끌어갑니다. '노아' 역에는 이한솔, 이봉준, 홍기범 배우가, '조슬린' 역에는 박영수, 조성윤, 송유택 배우가 캐스팅되어 열연을 펼쳤습니다. 특히 '조슬린' 역을 맡은 배우는 헥터, 공장 직원, 노숙자, 모자 가게 손님 등 노아를 제외한 작품 속 모든 인물을 연기하며 극의 상징성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봉준 배우는 14세 노아가 지닌 삶에 대한 애정과 순수한 의지를 정성스럽게 표현했으며, 광기가 인간이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이성일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조성윤 배우는 조슬린과 헥터 두 인물을 오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구현하여, 같은 배우 안에서 현실과 환상의 결이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했습니다.

관객 반응 및 평가

관객들은 '매드해터'에 대해 초반에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임팩트가 강하고 몰아쳐서 흥미로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부분이 많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이와 메시지를 가진, 강렬하고도 슬픈 작품이라는 감상도 많습니다. 작품은 산업혁명 사회 속에서 미친 모자장수가 되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맞기는 하지만, 서사가 예상보다 더 깊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노아는 끝내 구원받지 못하지만, 작품은 관객에게 "우리는 여전히 모자를 짓는 사람들"이라는 다른 형태의 위안을 남깁니다. 조슬린/헥터를 한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상징되는 '체제와 광기의 순환'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바로 그 불완전한 존엄이 이 작품을 오늘의 이야기로 만듭니다. 이 뮤지컬은 생존을 목적으로 살아가던 소년이 '이상한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자신이 원하는 모자를 만들어 쓰는 과정을 동화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질서와 규범 속에 갇힌 세계에서 '정해진 모자'가 아닌 '쓰고 싶은 모자'를 만들고, 쓰고, 파는 꿈을 꾸는 노아와 조슬린의 이야기는 선택 가능한 삶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는 이들을 향한 응원을 전달합니다. 익숙한 소재와 인물을 유쾌하게 풀어가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극본, 다양한 스타일로 받쳐주는 음악, 그리고 속도감 있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연출의 합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연 정보

뮤지컬 '매드해터: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는 2025년 10월 22일부터 2026년 1월 18일까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2관에서 공연됩니다. 공연 시간은 화, 목, 금요일 오후 8시, 수요일은 오후 4시와 8시, 토요일은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 및 공휴일은 오후 2시와 6시입니다. 월요일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공연이 없습니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100분입니다.